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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8_[삭발투쟁결의문]_130일 차, 진성선(장애여성공감)

  • [결의문&발언문]
  • 한자협
  • 10-28
  • https://www.kcil.or.kr/post/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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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권리예산 촉구 130일 차 삭발투쟁 결의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지하철은 일상의 공간이자 편리한 교통수단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내 몸이 진입하거나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차별의 공간이었습니다. 지하철은 대중교통이지만 일반 시민에 포함되지 않는 장애인은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리프트가 고장 나서, 혼자 다니면 위험해서, 다른 시민들이 불편해서 이용할 수 없습니다. 이동 수단이 없어서 추운 날에도 휠체어를 타고 먼 길을 돌아서 달려가는 일이 당연했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장소까지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가는 것을 포기하거나 참는 일이 익숙해졌습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떤 공간에 접근할 수 없고, 나를 보호하고 통제하려는 관계가 ‘차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지하철은 내가 갈 수 없는 공간인 동시에 비장애인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가고 싶은 공간이었습니다.

스무 살이 돼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습니다. 집, 학교, 복지관 이외에 내가 익숙했던 공간을 벗어나서 멀리 이동했던 첫 독립의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지하철을 타는 일은 낯설고 두려웠지만 나의 일상과 삶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학교를 가고,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이 그저 욕심이 아니라 내가 가져야 하는 권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독립해서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막상 몸으로 직접 겪어 보니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승강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넓거나 휠체어 리프트를 타는 경우에 어떻게 두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갔습니다. 지하철이라는 이동 수단이 하나의 선택지로 더 생겼을 뿐인데 내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고 사람들과 만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는 훨씬 더 컸습니다. 하지만 차별은 존재했음에도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주어진 조건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습니다.

장애여성공감 활동가가 되고 나서 내가 겪은 경험이 ‘차별’임을 알았습니다. 불편함을 말해도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활동가로서 마주한 지하철은 치열한 투쟁의 공간이자 변화를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지하철투쟁은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워 온 공간이자 사회가 요구해 온 장애인의 모습을 거부하는, 저항의 현장이었습니다. 어제 진행되었던 ‘강동구 장애인자립생활 권리 보장 정책 및 예산 확보’ 투쟁의 현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애인자립생활 권리와 탈시설 권리, 무장애 도시 선포를 요청하는 면담을 올해 5월부터 요청하였지만 면담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여럿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어야 면담 자리가 겨우 열렸습니다. 우리는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말하는 존재로서 이 공간에 함께 머물기를 원합니다.

아침 8시 출근길, 지하철에서 장애인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장애인이 의지가 없어서, 노력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그 공간에 들어가는 의미를 넘어서 누가 그 공간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장애인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시설에서, 집 안에서만 일상을 보내는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이동하는 의미를 넘어서 교육받고, 노동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들 불편하게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말은 장애인이 시민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여전히 국가는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겨 온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말로 시민들을 가르고 장애인에 대한 혐오를 조장합니다.

반복되는 상황에서 저는 얼마 전 활동지원 시간이 하루 7시간 이상 삭감되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화장실을 가고, 밥을 먹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포기해야 합니다. 책임져야 할 정부는 ‘예산이 없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말로 차별을 정당화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활동지원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서 ‘예산을 쓸 만큼’의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한다는 말입니까? 대체 누가 판단하고 장애인에게 시민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미 많은 장애인들이 죽음을 감당해 왔습니다.

오늘 삭발을 결의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삭발을 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활동지원이 필요한 저에게 머리카락 길이는 돌봄을 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이야기되었던 경험이 많습니다. 어쩌면 여성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길렀던 머리카락이 화장실조차 내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삭발은 또 다른 자유로움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편리한 지하철이 장애인에게 안전을 위협받는 공간이라면 바뀌어야 합니다. 장애인이 불평등하고 존엄하게 살 수 없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평등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장애여성인 저의 삶이 똑같지 않지만 차별받고 있는, 혼자의 힘으로 분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됩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계속 싸워 가겠습니다.


? 결의문 모아 보기: https://bit.ly/삭발결의문

✅ 한자협 19주년기념 영상 링크: https://youtu.be/rjB4SQYs5b4

? 투쟁 100일 차_133명 삭발 기록영상: https://youtu.be/UPKq2OMj5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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