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19_[삭발투쟁결의문]_93일차, 주상은(경남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 [결의문&발언문]
- 한자협
- 08-21
- https://www.kcil.or.kr/post/500
? 장애인권리예산 촉구 93일차 삭발투쟁 결의문
경남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상은입니다.
2002년부터 불안한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몸이 안 좋고 피곤해서 자고 있는데 과학 선생님이 저의 이름을 불러 깜짝 놀라며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 이후로 갑자기 뭔가 불안하고 시선을 자꾸 어디다 둘지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 주위의 친구들이 다 떠나고 남은 건 저 혼자였습니다. 항상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6년 동안 저는 집에만 있고 밖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26살 때 어머니께서 대학교를 다시 다녀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솔직히 불안과 시선 불안도 있어 자신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자고 생각해서 안경광학과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시선불안증이 차츰 없어졌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시선은 제가 보는 것 같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건 나뿐이었습니다. 졸업하고 나서 안경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면허증을 따려고 했지만, 항정신 약물을 복용하면 면허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2주 동안 약을 끊어서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고 면허증을 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약을 안 먹고 생활하니 급성 증상이 와서 갑자기 폭력적으로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우울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할 때 든 생각은 ‘이건 시설과도 똑같고 마치 감옥 같은 곳이구나’였습니다. 겉으로는 깨끗하고 좋아 보였지만 실상 거기서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병동 출입문엔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고, 같은 옷을 입고 매번 같은 음식이 나오고, 음식 먹고 나면 자고 일어나서 또 음식 먹고 자고 약 먹고 자고⋯. 외출과 외박은 주치의의 허락이 있어야 되고. 이렇게 살게 만드는 병원은 정신장애인인 저의 주체성을 매우 훼손하고 수동적으로 만들며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더 키우는 곳이었습니다. 지금 코로나로 외출과 외박은 물론 산책도 제한된 상황에서만 할 수 있는 정신병원의 정신장애인들은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이 병원에서 외출이나 외박, 퇴원을 했을 때 ‘왜 그렇게 날뛰고 돌아다니냐’ 물으시기 전에, 그 병원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하고 싶은 것들을 못 하는지를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2019년 합천 고려병원 정신장애인 당사자 사망 사건을 계기로 창원시청에서 당사자로서 결의문 낭독도 하고 행진도 했습니다. 장애 유형의 구분 없이 모든 장애인분들이 같이 외치고 함께하는 모습이 정말 저에게는 감동이었고 한편으로는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내가 주체성을 가지고 활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2021년부터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경남 진해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하는 자립홈에 들어와 있습니다. 자립홈에 들어와 제가 느낀 건 주위에 자립하고 계시는 분들도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에 나와 당당히 살아가고,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전엔 장애인 마크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저상버스는 그냥 만들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삭발 결의를 통해 앞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삶의 주체성과 활동의 의미를 더욱 새기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시설과 폐쇄 정신병원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도 시설과 병원에서 하루하루 힘겹고 고통 속에 사시는 분들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리고 당당한 한 시민으로서 살 수 있도록 오늘 삭발투쟁을 합니다. 투쟁!
? 결의문 모아 보기: https://bit.ly/삭발결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