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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1_[투쟁발언문]_혈우병 비항체 환자 대상 햄리브라 전면‧신속 급여 확대 촉구 기자회견(조은별 발언문)

  • [결의문&발언문]
  • 한자협
  • 12-02
  • https://www.kcil.or.kr/post/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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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조운 엄마 조은별입니다. 운이가 혈우병을 진단받은 지도 벌써 9개월이 지났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부양의무자 당사자로서도 발언을 많이 했었고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로서, 탈시설 장애인을 지원하는 활동가로서도 발언을 많이 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또 이 자리에 서는 건 그간 해 왔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일인 것 같습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희귀 질환을 가진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환우 가족이 되어 제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큰 결심과, 제 정체성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가 혈우병이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피하 주사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알아보니 건강보험이 되지 않아 우리가 맞을 수 있는 주사가 아니었습니다. 비급여로 돈을 내어 주사를 맞히는 부모님도 계시던데, 제 경제 형편상 한달에 500만 원이나 하는 약값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비급여로 맞힐 수 있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만한 돈을 부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기존에 치료하는 정맥 주사로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의 팔목에서, 발등에서, 손등에서, 목에서 혈관을 찾아 찌르고 또 찌르고, 심지어 찌른 채로 바늘을 이리저리 후빌 때면⋯. 자지러지며 우는 아이를 몇십 분 동안 지켜만 봐야 할 때면,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고 부끄럽습니다.

정맥 주사를 맞는다는 건, 단순히 횟수의 많음으로 인한 불편함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반나절 이상의 시간을 쏟아 병원에 가야 하고, 보이지 않는 혈관을 찾는 싸움과, 시간을 끌수록 더 우는 아이를 달래야 하고, 간호사의 실력이 출중하기만을 기도해야 하고, 소아 전문이 아닌 간호사를 만나는 날이면 혈관 찾는 데만 한 시간도 걸릴 수도 있고, 한번 쓴 혈관은 터지면 아물 때까지 못 쓰기도 합니다. 또 오랫동안 한자리에 주사를 맞으면 그 혈관이 숨어 없어지기도 합니다. 의사는 '케모포트'라는 중심 정맥관 수술을 해서 인공 혈관을 만들 수도 있다고 고려해 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전신 마취까지 해서 하는 수술을 시키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방법이 없는 거라면 받아들여야겠지만, 이미 헴리브라라는 피하 주사 신약이 버젓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미 2018년에는 미국과 일본이, 2019년에는영국·독일·스위스·프랑스가, 2020년에는 이탈리아에서 비항체 환자 급여화가 이뤄졌습니다. 우리가 이 나라와 비교해서 무엇이 부족해서 아직까지 급여화가 안 되고 있는 걸까요?

저는 곧 직장에 복귀해야 합니다. 지금도 아이를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데려가서 주사를 맞히고 돌아오면 반나절이 훌쩍 갑니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제가 직장을 빼고 어린이집 가기 전에 주사를 맞히고 오후에 보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시간 문제도 그렇지만, 지금 맞는 정맥 주사를 맞는다고 완전히 출혈이 잡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피하 주사 헴리브라와 다르게, 정맥 주사의 반감기는 8시간 정도로 뚝뚝 떨어집니다. 이틀 정도가 지나면 거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그럼 주사를 3일, 4일 간격으로 맞으니 의사는 남은 하루이틀은 다시 조심해서 다치지 않게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지내라고 했습니다. 제가 직장에 다니면서 어린이집에 맡기고 거기서 주사 안 맞은 날은 움직이지 말고 지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에게도 납득을 시킬 수 없고요. 결국 모든 걸 다 제가 짊어져야 하는 건데⋯. 우리 아이의 치료받을 권리와 엄마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권리는 우리 가족은 제외되도 되는 건가요?

아래는 제가 아이가 주사 맞았을 때의 시간과 상황들, 어디에 주사를 맞는지를 기록해 놓으려고 작성한 일기의 일부입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2022년 11월 16일 수요일 오후 2시

엘록테이트 250IU를 맞아야 하는데, 현재 500iu밖에 수입이 안 되고 있다고 한다. 500iu의 절반인 250을 만들어야 하는데 간호사 중 아무도 그 방법을 모른다. 진료실에 있는 간호사가 내려와 알려 주고 다시 갔다. 주사실 간호사가 아이를 안으라고 하고는 팔다리를 고무줄로 묶어 계속 두드려 댄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운다. 그 간호사는 결국 자신이 없는지 한참을 피부를 두드리고 문지르다 선임 간호사를 불렀다. 선임 간호사가 노련하게 오른쪽 손등에서 정맥을 찾아 주사를 놨다. '엄마, 엄마' 하고 울면서 나를 쳐다보고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괜찮아. 하나도 아프지 않아. 괜찮을 거야.'라는 기만의 언어뿐이다. 이 순간은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너무도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나머지 한 달치의 약은 동네 병원에 가서 맞히려 집에 가져간다.


2022년 11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너무 힘들어진다. 아이가 이미 겁을 먹고 울기 시작했고 오른쪽 손등에 혈관을 잡으려 이리저리 쑤셔 보다가 혈관이 터져 버렸다. 4명이 붙어서 팔다리를 한 쪽씩 잡아서 고정을 했지만 아이가 너무 자지러지게 울었다. 처음 가 본 동네 병원이어서 주사 놓는 방법이 너무 다르다. 우리는 항상 약에 동봉된 작은 바늘을 썼는데, 여기서는 그것보다 굵은 바늘을 쓴다. 그래서 더 아파하는 건가 싶었다. 중간에 도저히 아이를 안고 있을 수가 없어서 짝꿍이랑 바꾸고 도망쳤다. 오른쪽 발에서 간신히 혈관을 잡았는데, 주사 바늘이 커서 그런지 약이 들어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아이가 약이 빨리 들어가서 더 아픈 걸까. 천천히 놔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오지랖 부리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망설이다 말을 하지 못했다. 망설이는 엄마 때문에 우리 아가는 하고 싶은 말도 다 못 하고 사는구나. 엄마가 대신 말해 줘야 하는데⋯. 말을 못 했어, 미안해.


2022년 11월 30일 수요일 오후 1시

오늘은 완전 실패다. 처음 보는 간호사가 팔다리를 열심히 문지를 때부터 느낌이 왔다. 왼쪽 발을 찌르더니 선임 간호사를 불렀고 둘이 결국 이것저것 해 보다가 바늘을 뺐다. 선임 간호사는 다른 일을 맡기고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이미 아이는 간호사 가운을 보면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선임 간호사가 오른쪽 발등을 찾아서 주사를 놔 봤다. 잡은가 싶더니 결국 실패라며 뺐다. 아기는 기운이 빠져서 울지도 못하고 기대어 있다.  

다시 결국 갔던 간호사도 돌아와 둘이서 아이의 오른쪽 손등 혈관을 잡았다. 시작한 지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지쳐 있는 아이에게 핑크퐁 영상을 보여 주며 달래고 있었는데, 간호사가 실수로 아이 혈관이 잡힌 주사줄이 간호사 다리에 걸려 바늘이 들렸다. 그때부터 다시 아이가 발작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그래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괜찮아.'라는 말만 남발하고, 간호사에게 끝났냐는 재촉 끝에 끝났다고 하자마자 아이를 들춰 업고 달랜다. 아직 아이는 울다가도 안아 주면 그친다. 이렇게 착한 아이한테 누가 이런 고통을 줬을까⋯. 20분 동안 울다 지친 아이는 병원을 나와 차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런 고통 속에 살아야 할까⋯. 자신이 없다.


얼른 피하 주사 헴리브라가 급여화되서 아이도 한 달에 한 번씩만 주사 맞고, 남은 시간들에는 병원에서 우는 게 아니라, 꽃도 보고, 눈사람도 만들고, 맛있는 것도 먹는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간 되겠지가 아니라, 우리 아이가 너무 크기 전에⋯. 최대한 신속하게 급여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소중한 시간을 병원에서만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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