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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4_[삭발투쟁결의문]_118일 차, 박철균(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결의문&발언문]
  • 한자협
  • 10-04
  • https://www.kcil.or.kr/post/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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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권리예산 촉구 118일 차 삭발투쟁 결의문

저는 참 양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부모님에게 편애처럼 받았고 그로 인해 집에서는 응석받이가 되어 누나들을 너무 힘들게 했던 소위 말하는 가해자였어요. 한편으론 흔히 일반적인 ‘사내아이’ 같지 않은 성격과 행동 때문에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선생님이나 동급생에게 싫은 사람 취급 받았고 심지어는 또래 남자 동급생에겐 괴롭힘도 당했고, 6학년 때는 아예 ‘표적’이 되어 여자 동급생에겐 ‘더러운 아이’로 집중적인 배제를 당하기도 한 피해자이기도 해요. 초중고 통틀어서 친한 친구들이 많지 않았고, 그 몇 안 되는 친구 중 몇 명에겐 가스라이팅을 당하기도 했어요. 아, 중3부터 고2 때까진 특정 남학우에게 폭력적인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네요. 그러면서 저 역시 왕따를 당하거나 배제당하는 다른 친구를 멀리하거나 못된 말을 하기도 했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던 사람이었다고 돌이켜 봅니다.

이 어릴 때 얘기를 결의문에 꺼내는 것은 나는 왜 이렇게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활동가의 삶을 이어 왔고 삭발까지 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미워하고, 화가 나고, 증오하는 등 사람에 대한 상처가 아물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저는 사람을 사랑하거나 사랑받고 싶었고, 좋아하거나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고, 아끼고 싶었고 함께 웃고 싶었던 것을 너무나 바랐던 것 같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미움받거나 화를 내게 만드는 사람이 되기 싫었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삶은 어쨌든 혼자 방구석에 처박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을 때 쯤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만나게 되고, 강정마을 구럼비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상처받거나 고통받거나 배제되는 사람들을 외면하거나 오히려 비난하는 가해자가 아닌, 이 사람들이 누군든 간에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각한 순간 저는 활동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전장연은 내 인생 세 번째 활동 터젼입니다. 상근 활동을 처음 시작하자마자 사거리를 막고 사다리를 매는 장애인투쟁의 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활동 처음부터 휘몰아치는 투쟁의 강도에 매우 놀라기도 했지만, 점점 장애인운동에 스며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절대 들리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의 외침에 저 역시 함께해야 한다고 마음이 외쳤습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비장애인 시민들이 당연하게 누려 온 이동・노동・교육・지역에서의 생활 등 숨 쉬듯 지금 진행되는 일상의 희노애락을 누구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빈곤하다는 이유로, 홈리스라는 이유로 철저히 배제되는 것에 대한 속상함이 밀려왔습니다. 때로는 그 활동 속에서 여러 힘듦과 고민이 생기고 부침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동지들과 함께하는 이 활동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든다는 마음가짐이 있기에 30대 대부분을 장애인운동에 함께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그리고 장애인을 갈라치기 하는 이준석, 권성동을 비롯한 국민의힘 정치인들, 그리고 아예 ‘일반인’의 피해 운운하며 장애인을 대놓고 차별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들으십시오. 저는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즈음 장애등급제 폐지 서명 가판을 할 때, 동료 활동가가 한 시민에게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시민은 당신들처럼 예산 얘기를 하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어떻게 장애인에게 주냐”며 당신들처럼 얘기했습니다. 그때 그 동료 활동가는 이렇게 딱 한마디를 했었습니다. “저는 그저 내 소중한 친구와 동료를 더 이상 죽음으로 잃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그 이른 아침마다 200일째 지하철에서 온갖 혐오와 욕설을 들어가며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에게 불법인 것만 먼저 바라보고 우리의 목소리를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틀어막으려 하기 전에 여기 있는 이 장애인과 활동가, 그리고 지지하는 시민들이 무엇을 말하는 건지부터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장애인탈시설지원법 등 장애인권리법안 제정, 장애인 이동권・노동권・교육권・활동지원 보장… 이 모든 이야기는 거창하거나 불가능하거나 이기적인 얘기가 아니라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죽지 않고 함께 살고 싶다는 절규인 것을 왜 들어 주지 않습니까? 집에서 처박혀 있거나 시설에 갇혀서 보호라는 가면을 쓴 채 평생 죽거나 폭력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삶이 그저 당신들처럼 똑같이 일상을 누리면서 일생을 보낼 권리를 달라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고 특권이란 말입니까? 우리를 차별하고 혐오하고 갈라치기 하기 전에 함께 살고 싶다는 장애인의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벌써 그 삭발을 하며 절규하는 목소리가 200명을 넘었습니다. 더는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지하철을 타는 장애인의 목소리가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장애인도 함께 일하고, 이동하고 노동하고 교육받는 이 목소리가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이며 천년만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지금 당장이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바람을 오늘 삭발함에 담습니다. 나 역시 함께할 것임을, 나를 포함한 260만 장애인과 그 가족,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이 좌절하거나 괴로워하지 않고 백래시에 맞서 마침내 누구도 배제되지 않을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바람을 오늘 삭발함에 담습니다.

오늘로 2021년 12월에 시작한 지하철 선전전이 200일이 됩니다. 여러분, 저를 비롯한 우리의 이야기와 함께 계속 나아갑시다. 우리의 길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마침내 우리의 길로 세상은 해방을 맞이할 것입니다. 앞으로 제 머리에서 다시 자라날 머리카락처럼 장애인도, 노동자도, 성소수자도, 빈민도, 홈리스도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가 점점 자라날 수 있도록 함께합시다. 투쟁!


? 결의문 모아 보기: https://bit.ly/삭발결의문

? 투쟁 100일 차_133명 삭발 기록영상: https://youtu.be/UPKq2OMj5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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